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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곽아람, “그녀의 불완전한 우주, 룩셈부르크를 삼키다,” , 2013년 10월 7일.

22m 높이 유리 피라미드 천장에 한쪽 팔다리와 머리가 없는 흰색 사이보그, 촉수를 잔뜩 뻗은 괴물들이 매달렸다. 석회암 바닥엔 지진 직후의 지층(地層)처럼 꺾이고 뒤틀린 합판 구조물이 깔렸다. 인간의 과욕이 초래한 디스토피아, 유리를 투과한 햇살이 격자무늬 그림자를 드리운다. 5일(현지 시각) 설치미술가 이불(49) 개인전이 개막한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MUDAM(Musee d'art moderne Grand-Duc Jean) 중앙홀 풍경이다.

"미술관 건물과 제 작품을 관통하는 '건축적 언어'를 찾아냈어요. 유리 천장의 철(鐵) 구조, 햇살, 사이보그, 그리고 바닥 구조물의 선(線)이 겹쳐 보이도록 했죠. 그렇게 해서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었어요." 작가가 설명했다. MUDAM은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를 만든 중국계 건축가 I M 페이 작품. 특히 중앙홀은 I M 페이 특유의 유리 격자 구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웬만한 작가들은 작품을 설치할 엄두를 못 내는 곳이다. 이불은 이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4일 언론공개회에서 만난 룩셈부르크 보르트(Wort) 기자 마리-로르 롤랑(47)은 "이 까다로운 장소에 자기만의 우주(universe)를 구축하다니 대단하다"고 평했다.

내년 6월 9일까지 열리는 이불 전시는 MUDAM 최초의 아시아 작가 개인전. 유럽 미술관에서 열렸던 이불 개인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지난해 도쿄 모리미술관에 이어 작가는 이곳에서 다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펼쳐 보인다. 과학기술의 윤리를 묻는 1990년대 후반 '사이보그' 시리즈부터 거울로 자아(自我)를 되돌아보는 근작, 그리고 작업의 모태가 된 드로잉 400여점까지를 총망라한다.

벌거벗은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낙태 퍼포먼스를 하고, 뉴욕현대미술관에 날생선을 전시해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했던 90년대 '여전사(女戰士)'도 어느덧 나이를 먹었다. 그는 "사이보그 작업할 때만 해도 공격적이라는 이야길 참 많이 들었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참 오만했더라"고 조용히 말했다.

지하 1층 전시장에 설치된 거울 미로 'Via Negativa'(부정을 통해•2012)는 작가의 젊은 날, 나아가 인류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문 같은 작품이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관람객은 거울에 비쳐 일그러지는 자기 모습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마침내 미로 끝에 도달하면, 전구 수백개의 빛이 관람객을 감싸안는다. "대지진 이후 밤 비행기에서 도쿄를 내려다보는데 그런 끔찍한 일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미친 듯 반짝였어요. 참 애틋하더라고요. 때론 재앙을 겪지만, 결국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힘, 그게 참 아름답다고 느꼈죠."

괴물(몬스터), 아크릴 비즈와 스테인리스 스틸이 녹아내리는 파괴적 건축물(브루노 타우트 이후), 차갑고 기계적인 미래 도시(나의 거대한 서사) 등 끔찍하거나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 온 이불은 정작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중앙홀을 가리키며 "작품의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관객들은 이곳에서 굉장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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